*친왕록(親王錄)-1장-원아(園兒)-2화

*친왕록(親王錄)-1장-원아(園兒)-2화 


 주명위의 뒤에 서 있는 시녀는 그녀의 말을 듣고 안절부절못했으나 감히 나서지는 못했다. 원아는 마침 심심하던 차에 말벗이 생겨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기 때문에 큰 눈이 가느다랗게 변했다. 주명위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너 환관이 뭔지 알아?”

 “거시기가 없는 남자잖아.”

 “그래? 잘 알고 있네. 내 이름은 명위라고 해. 어머니는 그냥 위아라고 불러.”

 “아, 위아구나.”

 주명위는 자신을 환관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으나 원아는 그렇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어차피 자금성에 있는 사내아이라고는 황제의 아들이거나 환관뿐이었다. 원아는 그가 입고 있는 옷으로 미루어 황제의 아들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주명위가 주춧돌에 올라앉으며 물었다.

 “넌 그런데 왜 여기에 있어?”

 “마차의 뒤에 숨어서 아버지를 몰래 따라왔는데 여기는 함부로 들어오는 곳이 아니래. 그래서 아버지가 황제 폐하를 배알(拜謁)하고 올 동안 여기서 기다리는 거야.”

 “참 지루하겠구나.”

 “응. 이 언니들은 다들 벙어리인가 봐. 뭘 물어 봐도 이렇다, 저렇다 대답을 안 해 줘.”

 “시녀는 원래 그래. 입조심을 하는 편이거든.”

 “왜 입조심을 하는데?”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몸이 찢겨서 죽게 되니까.”

 근처에 서 있던 시녀들이 동시에 움찔 하고 놀랐다. 그러나 주명위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시녀들로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저 입을 다물고 묻는 말에나 대꾸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다가는 그것이 빌미가 되어 목숨을 위협할 터이기 때문이었다. 원래 자금성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잘못 놀려서 죽는 시녀가 적지 않았다. 시녀들이 벌벌 떨고 있는 사이, 주명위가 또 물었다.

 “네 아버지는 그럼, 지금 태화전에 있니?”

 “태화전이 어딘데?”

 “저게 태화전이야.”

 그는 뒤를 손가락질했다. 태화전은 자금성의 정전으로 중요한 의식이 이루어지는 거대한 건물이었다. 지붕은 황금색으로 번쩍거렸으며, 돌계단을 한참이나 딛고 올라가야 정문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곳에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태화전 앞에는 엄청나게 큰 광장이 있었는데 바닥에는 평평한 돌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그곳을 힐끗 본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너머에 있는 건물에 가셨어.”

 “그럼 중화전(中和殿)인가 보네.”

 “넌 이곳을 잘 아는구나?”

 원아가 약간 놀라며 물었다. 주명위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꾸했다.

 “당연하지. 난 항상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다니거든.”

 “나도 구경하고 싶은데.”

 “그럼, 나와 같이 구경할래?”

 “좋아. 아버지를 찾으러 가자.”

 “내 아버지도 같이 있을 거야. 같이 찾자.”

 주명위의 말에 원아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불쌍한 아이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자르고 하는 일이 환관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주명위는 아버지가 여기 있다면서 환관을 하고 있으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적어도 아버지가 자금성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고위층의 대신이라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환관이 양자를 들이는 일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주명위와 원아는 졸랑졸랑 중화전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주명위가 간 곳은 정문이 아니라 뒤쪽이었다. 원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아?”

 “거긴 금의위(錦衣衛)의 병사가 지키고 있거든.”

 “왜 지키는데?”

 “누가 황제 폐하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지키는 거야.”

 “넌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많이 알고 있구나.”

 “늘 여기서 사니까 그렇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 뒤쪽의 조그마한 문을 열어서 들어갔다. 좀 어둡기는 했지만 잠시 있으니 어두움에 눈이 익었다. 뒤따라온 시녀들이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눈에 띄었으나 그는 피식, 웃으면서 원아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거긴 정말 복잡한 미로였다. 하지만 주명위는 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좁은 문과 복도를 지나 큰 창문이 있는 곳에서 멈추었다.

 “앗! 누가 보고 있어!”

 원아가 병사 하나를 보고 낮게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 병사는 창문에서 멀지 않는 곳에서 안쪽을 지키다가 주명위를 힐끗 보더니 모른 척하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병사는 주명위가 황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이런 장난을 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괜히 아는 척했다가는 실컷 엉덩이를 맞게 될 것이니 모른 척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주명위는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 그냥 인형이야.”

 “아냐, 움직이는 것을 봤어. 머리를 이렇게 돌렸단 말이야.”

 “움직이는 인형이야.”

 원아는 걱정했지만 주명위는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그래도 다른 병사가 우리를 황제 폐하에게 해를 끼치려는 사람이라고 오해하면 어떡하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어째서?”

 “안 들키면 되잖아.”

 그는 창문을 조금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저기 황제 폐하와 여러 대신들이 있어. 네 아버지도 있을 거야. 찾아봐.”

 원아도 창문 틈에 머리를 내밀어 아버지를 찾았다. 넓은 방에는 황제가 앉아 있었고 그 앞으로는 여러 대신들이 줄줄이 늘어서서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황제를 본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 화려한 옷과 장식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황제를 함부로 쳐다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곧 고개를 돌려서 아버지를 찾았다. 그녀의 아버지, 송응성은 대신들 사이에 서 있었다.

 “앗, 저기 있다. 찾았어!”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다가 돌아보며 물었다.

 “너도 찾았니?”

 “응.”

 그는 황제를 보면서 낮게 대꾸했다.

 “이제 나가자. 밖에 연못이 있는데, 잠자리가 많거든. 같이 잡을래?”

 “좋아.”

 주명위와 원아는 들어왔던 곳을 되짚어서 나갔다. 그러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녀들이 휴, 하고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처에 있는 연못은 그리 큰 편은 아니었지만, 잘 조성되어서 보기에 좋았다. 그들은 연못의 가장자리에 앉아서 잠자리를 잡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린 아이들에게 잠자리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참이나 숨을 죽이며 집중하다가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날개를 낚아채야 했다. 그런 식으로 있자니, 둘은 중화전에서 황제와 관리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위아로군. 오늘도 구경거리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모양이야.”

 황제는 연못에 앉아 있는 사내아이가 주명위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평소 격식이 필요한 자리가 아니면 늘 저런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그 자유로운 분위기가 부러워서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의 옆에 있는 계집아이는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정녕공주(定寧公主)인가 했으나 옆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머리를 조아리는 시녀들을 옆으로 물리치고 다시 자세히 보았다. 자금성에서 못 보던 계집아이라니, 시녀인 것 같지도 않았기에 고개를 돌려서 물었다.

 “저 계집아이가 누구요?”

 뒤쪽에 있던 송응성이 냉큼 앞으로 나와서 대답했다.

 “신(臣), 이부상서의 딸이옵니다.”

 그는 속으로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다른 사람도 아닌, 황자와 자리를 같이 하고 있으니 자칫 무례라도 저질렀다면 호된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속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시녀들에게 돌봐 달라고 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아무리 시녀들이 자리를 지키고 싶어도 황자가 어딜 가자고 하면 별 수 없이 따라나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별로 기분 나쁜 기색도 없이 다시 물었다.

 “어째서 그대의 딸이 여기 있단 말이오?”

 “저의 미천한 딸이 마차에 몰래 타고 여기까지 들어왔사온데, 돌려보내기가 어려워 같이 돌아갈 요량으로 잠시 시녀들에게 맡겼사옵니다. 원래는 태화전 근처에 있어야 하온데 어찌하여 여기에 황자 전하와 같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위아가 억지로 데리고 왔겠지.”

 황제는 툭, 내뱉고는 걸음을 돌리려다가 말했다.

 “그나저나 위아는 다른 공주들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던데, 어찌하여 저 계집아이와는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구려. 만약 인연이 있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송공, 아무래도 천생연분(天生緣分)이란 것이 저런 게 아니겠소이까? 송공의 평소 인격을 보아 딸도 유순(柔順)할 것 같으니 보기에도 좋소이다. 위아가 마음에 들어 하는 모양인데 자주 데리고 오도록 하시오. 훗날 짝지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소만?”

 “황송(惶悚)하옵니다.”

 벼락이라도 떨어질 줄 알았다가 황제와 사돈이 되게 생겼으니 어찌 아니 기쁘랴? 송응성은 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집에 가서 춤이라도 추고, 잔치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가 일어서자 주위의 대신들도 축하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주명위와 원아는 그때까지도 잠자리를 잡느라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by 글그린이™ | 2006/06/30 22:04 | 친왕록(親王錄)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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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불량오이 at 2009/03/16 15:07
위아와 원아의 사랑이 시작되는 장면인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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