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왕록(親王錄)-1장-원아(園兒)-3화

*친왕록(親王錄)-1장-원아(園兒)-3화 


 사실, 황제가 이렇듯이 불쑥 주명위와 원아를 짝지어 주고자 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얼핏 자금성은 황제가 장악한 것처럼 보였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최근 대학사(大學士)인 무창공(武昌公) 고문정(高文靖)과 태감(太監) 왕부(王賻)의 세력이 날로 위세를 떨치더니 대신 중에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특히, 고문정은 딸을 황자와 혼인시켜 권력을 굳건히 하는 데에 힘을 쏟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 황태자비(皇太子妃)도 고(高) 씨였고 월왕비(越王妃)도 고 씨였다. 이제 주명위에게도 딸을 시집보낸다면 황자 셋이 모두 고문정의 사위가 되는 셈이었다. 그것을 불쾌하게 생각한 황제가 우연히 눈에 띈 원아를 보고 인연 운운(云云)하며 서둘러 짝지을 것이라고 말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주명위는 그러한 사정은 까맣게 모른 채, 잠자리 잡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품에서 작은 나무상자를 꺼내 잡은 잠자리를 집어넣었다. 상자는 가느다란 창살이 있어 안에서 잠자리가 파닥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잠시 시간을 보내면서 잡은 잠자리는 모두 여섯 마리, 그는 또 품을 뒤져 낚싯줄과 바늘을 꺼냈다. 원아가 궁금한 듯 물었다.

 “그걸로 뭘 할 건데?”

 “잠자리로 물고기를 낚을 거야.”

 “연못에서 낚시를 한단 말이야?”

 주명위의 말에 원아는 어이가 없었다. 낚시는 본래 바다나 강이나 호수에서 하는 것이지 이렇듯이 조그마한 연못에서 한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낚은 물고기를 연못에 넣어서 감상하는 것이라고 얼핏 들은 적도 있었다. 그녀는 주명위가 잠자리를 바늘에 꽂아서 연못에 던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잡아서 뭘 할 건데? 구워 먹으려고?”

 “응, 어머니에게 가져다줄 거야.”

 “왜?”

 “감기가 들어서 식사를 잘 못하시거든.”

 하지만 물고기는 기웃거리며 툭툭, 건드리기만 할 뿐 잠자리를 삼킬 기미는 없어 보였다. 주명위는 적잖게 실망했으나 참을성 있게 물고기가 낚이길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원아는 우연히 고개를 뒤쪽으로 돌렸다가 송응성이 초조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앗, 아버지!”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송응성은 주춤거릴 뿐,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그는 헛기침을 하다가 주명위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신, 송응성이 딸의 무례를 대신 사과드립니다, 황자 전하.”

 원아는 심장이 멈추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놀랐다. 환관치고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설마 진짜 황자일까 생각하고 함부로 대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녀는 다시 낚시를 하고 있는 주명위를 훑어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황자라고 할 수 없었다. 옷차림도 그렇거니와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위엄(威嚴)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네가, 황자라고? 아니, 황자 전하시라고요?”

 “응.”

 “아까 환관이라고 했잖아. 아니, 했잖아요.”

 “내가 언제? 내 이름이 명위라고 했지.”

 주명위의 말이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이 환관이라고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아니라는 말도 하지 않았기에 그녀 혼자 환관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우물쭈물하던 그녀는 송응성이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고 같이 넙죽 머리를 조아렸다. 머릿속으로는 입을 잘못 놀리면 몸이 찢겨 죽는다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황자 전하.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괜찮아, 괜찮아. 덕분에 오늘 잘 놀았으니까.”

 그는 나른하게 기지개를 켰다. 아무래도 물고기는 한 마리도 안 낚일 모양이었다. 그는 낚싯줄을 거둬들이고 상자를 열어서 남은 잠자리도 모두 놓아주었다. 하지만 승응성과 원아는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주명위는 그들을 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도 이제는 어머니께 가 봐야 하니까, 다음에 또 놀러 오도록 해. 송공이 잘 데리고 가세요.”

 “어이쿠, 황송하옵니다.”

 송응성은 다시금 굽실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원아는 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가 그 말이 얼마나 반가운지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되물었다.

 “정말?”

 “이것아, 제발 예의를 갖추어라.”

 송응성은 애가 타서 원아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오늘만 해도 천당과 지옥을 몇 번이나 오가고 있었다. 만약 간을 꺼낸다면 검게 타서 콩알만큼 쪼그라들었으리라. 그래도 우연히 원아가 황제의 눈에 띄어 주명위와의 혼인을 약속받았으니 운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주명위가 휘청휘청 내정 쪽으로 걸어가자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살펴 가십시오, 황자 전하.”

 “살펴 가세요.”

 주명위는 힐끗 원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것을 돌아보았다. 왠지 너무 귀여워서 다음에도 꼭 다시 보고 싶었다. 그는 기분 좋게 흥얼거리며 내정으로 들어갔다. 내정은 자금성의 북쪽을 일컫는 말이었다. 남쪽이 외조(外朝)라는 공적(公的)인 장소라면, 북쪽의 내정은 황제의 사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인 셈이다.

 주명위는 천천히 걸어서 건청문(乾淸門)을 지나 건청궁(乾淸宮), 교태전(交泰殿), 곤녕궁(坤寧宮) 등을 차례로 지났다. 그중 건청궁은 황제의 침소가 있는 곳이고 곤녕궁은 황후의 침소가 있는 곳이었다. 중간에 마주친 환관이나 시녀 중에 그를 알아본 사람은 머리를 조아렸으나, 옷차림 때문에 알아보지 못한 사람은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소비 진 씨의 처소(處所)는 곤녕궁에서 멀지 않은 흥덕궁(興德宮)이었다. 흥덕궁의 뒤로는 작은 언덕이 있고, 앞으로는 넓은 정원이 있었는데 바깥쪽으로는 나무가 총총히 심어져 마치 성벽처럼 보였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소비 진 씨가 이미 뜰에 나와서 주명위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자 전하께서는 시간을 꼭 맞추어서 오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녀는 별로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으니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일부러 화난 척했다.

 “어머니를 위해서 물고기를 잡으려다가 늦은 것뿐이에요.”

 주명위가 떨떠름하게 변명했다. 그러자 그녀도 웃고 뒤쪽에 서 있던 시녀들도 기어이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것을 보고 주명위가 눈을 부릅뜨자 시녀들이 주춤거리다가 웃음을 멈추고 서둘러 뒤쪽으로 도망갔다. 소비 진 씨는 그의 팔소매가 물에 젖은 것을 보고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도대체 어디에서 물고기를 잡으려고 한 겁니까?”

 “중화전 근처에 있는 연못이었어요. 잠자리를 많이 잡아 바늘에 꿰어서 던졌는데, 주둥이로 건드리기만 할 뿐 물지는 않더군요.”

 “그것 참 이상하군요. 왜 물지 않았을까요?”

 “아마 원아가 시끄럽게 떠들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원아?”

 소비 진 씨는 잠시 누구를 말하는지 몰라 의문이 생겼지만 곧 송응성의 딸을 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주명위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시녀들에게 저녁을 차리도록 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그녀밖에 모르던 그가 점점 품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자녀가 없어서 오직 주명위만 바라보고 살아온 터였다. 배 아파서 낳은 것은 아니었으나 핏덩어리 때부터 직접 유모를 골라 젖을 먹이고, 그가 울면 어르고 달래서 키웠다. 만약, 주명위가 그녀를 더 이상 찾지 않게 된다면 언제 찾아올지도 모를 황제를 기다리면서 허송세월을 보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주명위를 옆에 끼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게 자금성에서 여인이 산다는 것인가? 그녀는 문득 세월이 무상함을 느꼈다.

 “나도 이제 늙었구나.”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아직 늙지 않으셨어요.”

 주명위가 저녁을 먹으면서 대꾸했다. 마흔이 채 되지 않았기에 그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속뜻은 그게 아니었으므로 그녀는 한숨만 내쉬었다. 주명위는 최근에 발이 넓어져 동궁(東宮)에 가서 황태자 주지선과 장난을 치기도 하고, 월왕 주소진과 같이 글을 배우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대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태황태후(太皇太后)나 황태후(皇太后)를 찾아가서 농담을 곧잘 주고받았다. 사실, 태황태후나 황태후는 황제도 쩔쩔 매는 황실 최고의 어른이었다. 그러나 태황태후나 황태후는 물론이고, 황제나 황후라고 할지라도 주명위 앞에서는 여염집의 경우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주명위야말로 누구와도 친한, 자금성의 마당발인 셈이다. 하지만 반대로 주명위가 그렇게 발이 넓어질수록 소비 진 씨는 그에게서 외면(外面)을 당하는 형국이었다. 소비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황제에게 한 번도 사랑을 받지 못했던 그녀는, 엉뚱하게도 주명위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제 아무리 효심(孝心)이 깊어도 때가 되면 어미의 품에서 벗어나는 것이 당연하거늘.”

 늦은 밤, 그녀는 주명위를 재워 놓고 염주(念珠)를 굴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음날, 아침에 황후가 친히 흥덕궁에 찾아왔다. 정명황후 이 씨가 죽은 뒤 새로 황후가 된 그녀는 원래 공비(恭妃) 장(張) 씨로, 소비 진 씨와는 같은 품계(品階)였었다. 하지만 황후의 자리가 비게 되자, 배경(背景)도 좋고 인물도 좋아서 냉큼 황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전부터 소비 진 씨와는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니었으나 좋은 편도 아니었기에 그녀의 방문은 좀 뜻밖이었다. 소비 진 씨는 그녀가 주명위를 만나러 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거실의 안쪽에 자리를 마련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황후 마마께서 어인 일이신지요?”

 “내가 여기 올 일이 위아를 만나는 것 빼고 뭐가 있겠어요? 감기에 걸렸다고 들었는데 차도(差度)는 있나요?”

 황후는 자리에 앉자 소비 진 씨가 대답했다.

 “좀 나아진 듯합니다.”

 “그런데 위아는 어디에 계시오? 아니, 그것보다 얘기는 들으셨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소비 진 씨는 어리둥절하여 되물었다. 그러자 황후가 몸을 앞으로 내밀어 낮게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위아를 송응성 공의 딸과 짝지어 준다고 하던데, 못 들었나요?”

 순간, 소비 진 씨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오늘 같은 일이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시점이어서 그녀에게는 시련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주명위를 흥덕궁에 데리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리기도 했거니와 혼인(婚姻)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가 혼인을 한다면 헤어져서 따로 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녀는 품에 있던 주명위를 놓아줘야만 한다는 사실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by 글그린이™ | 2006/06/30 22:05 | 친왕록(親王錄)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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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글그린이™ at 2006/07/03 17:18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Commented by 불량오이 at 2009/03/16 15:12
잘봤습니다~ 잼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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